2021/09/12 22:28

완전한 행복 천만권의 책읽기

<완전한 행복> 정유정, 은행나무 2021년

P.143 
 이름하여 '문간에 발 들여 놓기', 사소한 부탁으로 시작해 뒷일까지 내맡겨 버리는 수법이었다. 상대는 알면서도 당한다. 아주 잠깐 핸드백을 들어줬을 뿐인데, 어느 틈에 모든 짐을 이고 진 채로 시녀처럼 뒤따라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P. 175
 그는 그녀를 여자가 아닌 다른 존재로 봤다.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자면 '야채' 정도나 될까, 달콤하진 않지만 가까이에 있고, 반하지는 않았으나 안전하며, 즐거움보단 이로움을 주는 존재, 야밤에도 거리낌 없이 찾아갈 수 있고 태연하게 재워 달라 말할 수 있으며, 편안하게 자고 가도록 배려해주는 사람.
 그녀 역시 그가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았다. 적어도 멱살 잡고 같이 자자고 하지는 않았다. 그가 다녀간 후에 늘 그 점을 후회했다. 멱살을 잡았어야 했는데, 영 가망이 없다면, 저 태양계 밖으로 차버리거나. 

P. 520
 흔히 자아도취형 인간을 나르시시스트라 부르지만,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는 의미가 좀
다르다. 통념적인 자기애나 자존감과도 거리가 있다. 덧붙이자면 나르시시스트가 다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모든 사이코패스는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다. 
 그들은 사이코패스보다 흔하다는 점에서 두렵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정작 자아는 텅 비어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며, 매우 매혹적이라는 점에서 위험한 존재다. 그들에게 매혹된 이는 '가스라이팅'에 의해 길들여지고, 조종되고, 황폐화된다. 때로는 삶이 통째로 흔들린다. 
......
 언제부턴가 사회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미덕이다. 다만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년의 밤>을 통해 정유정 작가를 알았다. 영화가 나왔을 때  보기를 거부했다. 워낙 책으로 좋은 인상을 받았고, 무서운, 잔인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이 "고유정 사건" 이다. 책 말미에 작가의 말에서 언급된 것처럼 떠올린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시했다. 
 작가는 주인공을 화자로 내세우지 않으면서 그 인물을 명확하게 조각해내는 시도를 했다. 나는 주인공이 화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못하고 읽었다. 그것은 그만큼 명확하게 조각해 낸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522 페이지의 두꺼운 책이지만 한번에 다 읽어야 할 것이다. 멈추어 두고 아껴 읽기에는 뒷 장에 이어질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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