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8 23:26

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 천만권의 책읽기


<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 김성우, 엄기호 지음, 따비, 2020년

1장. 리터러시, 위기인가 변동인가

읽고 쓰는걸 중심에 둔 사람들은 
보고 찍는 게 중심인 사람들이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오해 할 수 밖에 없어요. 
읽는 행위는 맥락을 파악해 가는 과정이 잖아요.
.......
확실히 새로운 세대가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 텍스트를 기반으로
더 큰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죠.
그런데 저는 그런 지적이 
너무 성인 중심의 관점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


책을 점점 멀리하고 유투브에 빠져있는 아들아이에게
'엄마가 읽은 책에 이러이러한 내용이 나오는데......'
하며 책에 대한 내용을 소재로 삼아 대화를 시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아이가 책속의 내용을 꿰뚫고 있어서 심도 있는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아이에게 혹시 책을 읽어보았는지 물어보면 대답은
"아니요. 그런데 엄마, 유투브에 관련 내용이 넘쳐나요" 라고 합니다.
어떤 경우는 대화 중에 질문한 엄마의 물음에 관련 영상을 찾아
확실히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요.
'책을 왜 읽지 않느냐?'는 저의 잔소리는 그쳤습니다.
제가 책을 읽듯 아이는
유투브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2장.  읽기는 여전히 유효한가

공식적으로는 말과 글에대한 열정과 관심을 키워주는게 
리터러시 교육이 목적이지만 실제로 학생들이 배우는 건 
그 반대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읽기는 따분하고 교조적이다.
권위있는 텍스트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를 풀기 위한 읽기가 최고다.
이런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하게되는거죠.
기성세대가 그런 태도를 심어주고 있는건 아닌가 깊이 성찰해야 돼요.
텍스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만 
다양한 글을 접하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골라서 
또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겠죠.


스스로 고정관념을 깨려는 노력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되돌아보면 아직 멀었다는 반성만 보입니다

3장. 읽기에서 보기로, 미디어와 몸

리터리시를 논의할때 중요한것은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느냐',
'영상을 봐도 되느냐' 가 아닙니다.
그 무엇을 하든 이것들을 통해서
타자의 세계에 대한 이해에 도달 해야한다는 것이죠.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것은 
타자의 세계가 나의 세계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책읽기 힘들어 하는 이들이 내게도 물어 왔던,
'꼭 책을 읽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도 수없이 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어쩌면 습관이 되어버려 독서라는 공간에
나를 가두어 둔 것은 아닌지 ......
그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위로받고 있다는 것을
독서 밖에서 보는 이들은 답답하고 불쌍해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합니다.

4. 리터러시, 어떻게 다리를 놓을 것인가

탐구와 연구를 지속 시키고
그것을 현실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참조, 조언이예요.
지금 내 탐구와 연구는 어떤 수준이며
이 수준에서는 어딜가고 누구를 만나 
어떤 조언을 들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바로
참조, 조언의 역할입니다.
자신이 참고할 지점을 같이 찾고 알려주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배움을 지속시키는 도서관의 역할이라는게 
이책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
우리 동네의 작은 도서관 하나가 떠오릅니다.
주거 밀집 지역 한가운데 자리한 도서관인데
2층 주택을 도서관으로 개조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지만 소규모 행사를 끊임없이 계획하고 진행하는것을 보면서 
이런 작은 도서관이 소통의 장으로 탁월하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연령별로 소규모의 활동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고
동네 사랑방처럼 이용되면서
각종 나눔도 이루어 지는 공간이죠.
특색 있는 도서관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5장. 삶을 위한 리터러시 교육을 향해

근본적으로 읽기라는 건
다른 사람의 삶에 가서 닿는 일이죠.
쓰기라는 건 내 삶을 혹은 생각과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던지는 행위에요.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것들을 외면하면
리터러시 교육이 재밌을 수가 없고
기쁨이 깃들 수 없죠.
리터러시에 위기라는 게 있다면 
텍스트 자체의 질이나 양의 문제는 아닐거고
그걸 둘러싼 삶의 기쁨에 위기인것 같아요.
리터러시가 기쁨으로 다가갈 수 있느냐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수 있느냐 
하는 문제죠.

다른이의 삶에 닿고.
내 삶을 다른이에게 던지는 것!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소통!
리터러시가 다리놓기의 역할을 할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기쁨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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