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6 21:29

탕자 돌아오다 천만권의 책읽기

<탕자 돌아오다> 앙드레 지드, 아이브러리, 2009년

10년이 넘도록 교회를 떠나 살다가 다시 나가게 되었다.
세례를 받기 위해 교육을 받고 문답식을 하는 과정에서 교회에 나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학교들어가기 전부터 교회 유치부에 나가기 시작했고, 고3때 부터 공부를 핑계로 나가지 않다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아예 발길을 끊었었다.
결혼을 하고 편찮으신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49일 동안 매일같이 상식을 지어 올리는 일도 했었다.
일년에 추석, 설날을 포함해 9번 제사를 지내는 종손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교회는 까맣게 잊었다.
두 아이를 아들과 딸을 낳아 기르며, 여전히 파킨슨병으로 고생하시는 시어머님을 간병하느라 지쳐있을 시기에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계기는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시어머님이 잠시 산책을 나가셨다가 만난 분과 같이 오셨는데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교회에 같이 다녀왔다하시며
교회에 나가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 뒤로는 교회사람들이 집으로 자주 찾아왔다. 
몸이 불편한 어머님을 위해 집으로 와서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잦았기에
나는 또 그 손님치레가 버거워져 더 지쳐갔다.
시어머님이 주일에 같이 교회가자고, 혼자 가실수 없는 몸 상태라 집에 계셨으면 좋겠는데, 데려다 달라고 하시며 보채시니 
그 또한 나를 더 지치게 했다. 
결국 휠체어에 모시고 갔다가도 몸 상태가 더 나빠지면 예배를 마치기도 전에 다시 모시고 와야하는 경우가 잦았다. 
더구나 두살바기 작은애를 등에 업고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고집을 피우는 어머님이 못마땅한 남편은 화가 나 있었고, 굳이 어머님을 모시고 나가는 나를 돕는 일을 거부했다.
남편의 뜻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컸던지 평소에는 잘 봐주던 아이도 그 시간에는 봐주지 않고 화를 내며 잠을 자버렸다.
그렇게 엉망이었던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지금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흔들어 진다.
결국 나 부터 마음을 바꿔먹고 내가 마음을 바꿀 수 있었던 생각을 남편에게 얘기했다.
평소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시는 어머님이 일요일 잠시라도 외출할 수 있는 핑계로 삼아 교회에 모시고 가자고 했다.
몸상태가 더 나빠지면 그 마저도 할 수 없을테니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강조했다.
더불어 나도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데 그렇게 라도 같이 다니자고 부탁했다.
그래서 남편이 져주었다.
날씨가 좋은날 온가족이 교회로 나서면 아파트 돌아나서는 길에 핀 꽃을 보고 어머님이 참 좋아하셨고 
아이들도 덩달아 좋아서 뛰었다. 
다 같이 웃을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럴 수 있었던 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거나 눈이 많이 오면 교회에 모시고 갈 수가 없었다. 
어머님이 너희들이라도 다녀오라고 떠 미셔서 할 수 없이 어머님만 집에 계시기도 했는데
점점 그횟수가 늘어나고 한달에 한번도 어려워 어쩌다 한번...... 결국 어머님은 교회에 다니실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집에서 온종일 기독교 방송을 틀어놓고, 괴로운 몸을 감당하시며 시간을 보내시는 것이 일상이 되셨다.  
시어머님덕분에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된 나의 사연을 들으신 장로님 한분이 웃으시며 
나에게 돌아온 탕자라 하셨다. 
성경에 나온 탕자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적절한 비유라 생각했다.
.....
앙드레 지드의 <탕자 돌아오다>는 성경의 내용과 확연히 다른 해석이다.
생각의 전환이 탁월하다.    
앙드레 지드가 세대를 앞서간 걸까?  
탕자나가서 경험한 고된 일들로 깨닫고 얻은 것들은 무엇이 중하고 우선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기준을 찾도록 해준다.
당연한 줄 알고 있던 성경적 해석(아버지, 형, 엄마)에 반하는 해석(탕자) 또한 너무나 설득력있다.
가족과 탕자의 대화는 팽팽한 줄다리기 같다. 
단순하게 보면 3대1이라 불리한 입장인데 말이다.
........
탕자의 동생이 집을 떠난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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