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7 23:59

간병살인 천만권의 책읽기

제목을 보고서 읽을까 말까 망설이며 몇달이 지났다.
결국은 읽고야 말았지만 읽어야 할 책이지만 괜히 읽었다 생각했다.
아팠다........
내 나이 28살 되던 해부터 시작해 13년간 시부모 간병을 했다. 이후 요양병원에 모신지 4년 아직도 간병중이다.
첫돌이 된 딸아이를 키우며 파킨슨병을 알고 계신 시어머님과 방광암이 전이되어 대장암을 앓고 계신 시아버님의 간병을 했다.
시아버님은 재발된지 6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처음에 항암치료의 의미가 없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진단을 들었들때는  호스피스병동에 계셨었는데  거의 매일 죽어나가는 환자들을 보는 것을 너무 고통스러워 하셨다. 
시골 집으로 가시고 싶어 하셨지만  훨씬 이전부터 파킨슨병을 알고 계신 시어머님은 아버님을 간병하 실 수가 없었다.
따라서 간병은 나의 몫이었다.
17평 짜리 아파트에서 편찮으신 두 분과  우리부부, 갓 돌이된 딸아이.... 그렇게 다섯식구가 살았다.
시아버님은 몰핀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티셨고, 약에 취해 사람을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양 옆구리에는 대변주머니, 소변주머니를 달고 계셔야 했는데 약에 취해 온정신이 아닐때는 주머니를 뜯어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옷가지는 물론 당신이 누웠던 이부자리며 벽지까지 엉망이되었다. 
씻기고 치우고 빨래하고........ 기계처럼 움직여도 해야할 일들은 좀 처럼 줄지 않았다. 나의 하루는 길고도 길었다.
그러나 말기암 환자에게는 짧은 생이었다. 그해 뜨거운 여름이 물러가려 할 때쯤 돌아가셨다.
이후 배우자를 잃은 시어머님은 더욱 병이 심해졌고 거동이 불편해 좁은 방에서 거실로 나오는  몇 발자국도 제대로 걷지 못해 넘어지기를 여러번 하셨기 때문에 늘 부축을 해야 했고 점점 방 밖으로 나오는 일이 줄고 누워지내는 생활을 하셨다. 
나의 30대는 그렇게 지났다.
많이 우울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린딸을 보고는 또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더 우울했다. 

간병으로 인해 지쳐버린 몸과 마음은 딱 죽어버리면 모든게 편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었지만
책속의 사례들은 환자를 살해 하고 자신을 죽이는 동반자살에 가까웠다.
안 해 본 사람들은 절대로 공감할 수 없다. 
들어서 아는 것과 겪어서 아는 것이 천지차이라는 것을 몸소 실감했다. 
함께 살며 같이 겪었다고 생각했던 남편도 나의 고통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새벽같이 출근해 늦은 퇴근을 하고 나면 잠들기 바빴으니까.....
나 역시 남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짐작컨데 늘어만 가는 생활비를 벌어야하니 생계를 위해 더 많이 애를 썼을 것이고, 
힘들어하는 나를 보는 것도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는 서로에게 힘드냐? 힘내라! 이런 말들을 할 수 없었다.
그런 말 조차 사치였다. 그런말로 툭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아 서로 눈치만 보았는 지도 모른다.
여유가 없었다. 
그 짧은 한마디 말을 건넬 시간도 마음의 틈도 없었다.


하루 하루 지내다 보니 쌓인 시간이 13년 이었고 
갖고 있던 에너지는 조금씩 조금씩 닳았지만 충전할 시간이 없어 결국엔.....
나도 모르게 방전되어 꺼져버리는 것이다.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생겨나면서 재택간병 서비스를 받게되었을 때부터는 훨씬 나았다.
첫 시행때부터 어떻게 제도가 바뀌고 변화되었는지 빠르게 체감했다.
노인성 질환이 급증하는 고령화 시대를 사는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
사회적 제도적 보완이 보다 완벽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간병살인> 마에다 미키, 시부에 치하루, 무코하타 다이지, 남궁가윤 옮김, 2018년 시그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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