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30 23:19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기대하며 – 9월 30일 날마다 날마다 글쓰는 이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좋은 노래를 들으며 떠올린다.
멋진 날에 내가 떠올리는 사람이 누구인가?
나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일까?

멋진 날로 만들어 줄 방법을 찾았다.
편지를 써야겠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편지를 부치는 나의 마음이 더 설렐 것 같다.
요즘 우표는 어떻게 생겼지?
교회에서 새 신자들에게 이슬비 편지를 부치는 봉사를 한다.
카드 봉투에 담긴 엽서 한 장을 보내는 규격 우푯값이 430원이다. 
그런데 우표를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바코드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서 보내기 때문이다. 
풀칠할 필요가 없어 편리하지만 우표가 아닌 것이 아쉽다. 
200장씩 대량 구매하니 영수증 롤처럼 바코드 스티커가 줄줄 인쇄되어 나온다.
동네 작은 우체국에는 그림 우표가 그만큼 비치되어 있지 않다고도 했다.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검색해보니 기념 우표들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 같다.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째 우표에 더 마음이 치우친다.

2022/09/29 23:14

<어떤 호소의 말들> 최은숙, 창비 2022년 천만권의 책읽기

 <어떤 호소의 말들> 최은숙, 창비 2022


목차

 

프롤로그: 우린 조금 슬프고 귀여운 존재

1부 어떤 호소의 말들

 

그 남자의 새빨간 거짓말

용주골 그 방의 아이에게

궁금하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는 여전히 또렷한데 검찰의 심장부에서 일어났던 고문 사건에 관한 기억은 가뭇하기만 하다. 인권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심판이 끝난 뒤에도 피해자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는 어떻게 장발장이 되었나

통조림이 물증으로라도 남겨져 있었다면 제조번호 등을 조사해서 남자가 주장한 대로 서울 종로의 다른 가게에서 판매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제일 좋은 옷

소모적이고 무용해 보이기만 한 행위가 알고 보니 A의 몸부림이고 외침이었다. 약자에게 더욱 엄격하고 불리한 법과 제도를 향한, 낡은 양복 한 벌 가진 이의 인정투쟁이었던 것이다. ...

핀란드를 비롯해 스웨덴, 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 소위 선진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수벌금제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일수 벌금제는 벌금 행위자의 수입에 따라 벌금을 다르게 부과하는 제도다. 일수벌금제가 잘 정착된 핀란드에서 한 기억의 대표가 속도위반을 해 우리 돈으로 2억원 가까운 벌금을 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 속도위반 벌금징수 금액이 겁나지 않는 고가의 스포츠카 운전자

 

신이 아닌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진정 응원하는 것

절대 그러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최저임금 받으며 참아낸 말들

수인의 하얀 손

마지막 거짓말

메일 아이디가 호소안 이유

굴비 장수 주제에

어떻게든 버티며 존엄을 지켜가는 이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은 칼이 아니라 한마디 말이나 태로일 수 있다.문제가 되면 별 뜻이 없었다고 해명되기 일쑤인 그 언동들은 사실 평소에 우리 안에 내재된 차별과 편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차별과 편견은 어떤 존재를 한순간에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꼭 어떤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를 진공청소기나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생각 없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살구색을 살생이라고 말하면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은 지워지거나 틀린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된다. 생각해보면 정작 우리의 피부색과도 다른 그 색을 왜 우리는 살색이라고 부르게 된 것일까? “청소년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으면 학생 할인입니다라는 음성 메시기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제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청소년이지 학생은 아니거든요.” 10대는 누구나 학생이라는 고정관념이 탈학교 청소년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대중교통 학생 할인을 청소년 할인이라 이름으로 바꾸게 된 이유다.

우리는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지를 알아채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예민하게 감각을 열어놓아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이런 마음 상태에 인권감수성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한다.

 

2부 고작 이만큼의 다정

 

일의 기쁨과 슬픔

조사국의 탈곡기 소리

프놈펜 가는길

수취인 사망

그놈의 인권

범죄 피의자의 인권 문제는 자칫 그들의 죄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난받을 때가 있다. ‘남의 인권을 잔혹하게 짓밟은 자의 인권을 왜 보장해야 하는가? 그들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다. 얼굴과 주소와 모든 사생활을 공개하자.’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에 관한 찬반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무덤 옆에 텐트를 치고

친절한 조사관의 아슬아슬 줄타기

누가 더 악당인가

낯선 햄버거 메뉴와 음료를 겨우 선택하고 결제 단계에 도달했는데, 감자기 카드로 하시겠습니까? 현금으로 하시겠습니까?”라는 음성이 튀어나왔다. 음성으로 물어보니 음성으로 답하면 된다고 생각하고(이것이 자연스러운 반응 아닌가?) 화면에 대고 큰 소리로 카드라고 답했다. 반응이 없어 두 번 더 카드” “카아드하고 외쳤더랬다. 내 꼴을 보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계산대 안쪽에서 황급히 뛰어와 신용카드를 낚아채 그 빌어먹을 기계에 투입했다. 그날 이후 나는 키오스크만 만나면 째려보게 되었다. 무작정 소리부터 지르던 노인도 혹시 내가 키오스크처럼 느껴졌던 것이 아닐까? 뭘 좀 물어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법률용어를 쓰면서 이것저것 써내라고 하는데, 눈은 어둡고, 소리는 안 들리고, 조사관의 로봇 같은 태로에 무시를 당하는 기분이 드니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권 지킴이인원 찍힘이사이에서

청와대 앞을 쌩쌩

조사관의 직업병

열 사람이 한숟가락씩 밥을 보태고

밤길의 공포

아들의 아르바이트를 만류하며

저녁노을도 다 사정이 있었겠지요

춤출 수 있어야 인권이다

반려묘 불이에게 배운 것


 

내가 삼킨 호소의 말들

 


 

살면서 별별 억울한 일이 많았을 텐데 딱히 분한 마음으로 남아 떠오르는 일이 없는 걸 보면 그만큼 평탄하게 산 것일까?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않으려고 탈탈 털어버리고 잊어버렸나 보다.

산전수전 경험치가 쌓이며 무뎌지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며 억울함이 다소 풀리기도 했다. 어쩌면 풀렸다기보다 빛이 바랜 것처럼 흐려진 것일 게다. 그 정도의 억울함이라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야 할까?

 

어느 노래가사처럼...

 

살다 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가끔 어디 혼자서 훌쩍

떠났으면 좋겠네...

 

떠나려 했다. ()에서...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호소할 데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소화할 수 없는 덩어리 말을 꿀꺽꿀꺽 삼켰다. 그렇게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삼켜야 할 말의 덩어리는 점점 커졌고, 이미 채워진 속은 터지기 직전이었다.

긴 하루를 보내고도 잠들지 못하고 두려운 밤이 물러날 때쯤, 조용히 집을 나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은 잠겨 있었다. 잠긴 문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어린 자식의 얼굴이, 엄마의 얼굴이 남편의 얼굴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도망치는 스스로가 미웠다. 죄책감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나약해진 마음은 살아서 뭐 하나...

떠날 궁리로 또 하루를 보냈다.

결국, 삼킨 말들은 속에서 터지고 말았다. 혈압이 치솟고, 간 수치에 이상이 생겨 쓰러졌다. 감기는 폐렴으로 번져 고열로 혼수상태가 되었다. 입원 치료...

육아와 시부모 간병에 지쳐서가 아니라 원래 몸이 약한 사람이었나 보라고 했다. 젊으니 회복이 빠를 거라고도 했다. 의사가 한 말이 아니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파도 죄가 되는 며느리로서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열흘이 넘도록 입원해 있으면서 수액을 맞으며 내내 잠만 잤던 것 같다. 아이들은 친정에 맡겨졌고 시어머님은 시누가 모셔갔다. 퇴원하는 날이 어버이날이었다. 아이들이 있는 친정으로 갔다. 아픈 딸이 안쓰러워 뭐라도 먹이려는 부모님 뵙기에 부끄러웠다. 저녁에 시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버이날이니 와서 엄마 뵙고 다시 모시고 가라고 ...

 

저 오늘 퇴원해서 친정에 아이들 데리러 왔어요.....”

 

전화기를 빼앗은 남편이 밖으로 나가 통화하는데 목소리가 거칠고 점점 커졌다. 남편은 세상에 없는 불효자가 되었고, 나 역시 불효녀다.

삼킨 말들이 몸 안에서 화를 내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삼켜야 할 말들이 사라지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그나마 변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삼킬 만큼 삼키고 삼킬 수 없는 말들은 내 발치에 쌓았다. 더러 삼켰던 말도 토해내어 발치에 쌓았다. 차곡차곡 나를 둘러쌓아 담을 만들어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담 안에 숨고 싶으면 숨었고 담을 넘고 싶으면 넘었다.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그다음은 잊었다.

내가 인간애()로 받들며 할 수 있는 적절한 예의의 기준이었다. 남이야 무어라든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챙기고 거절할 수 있었다.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오래 걸렸지만 삼킨 말들은 다 물러져 저 밑바닥에 눌어붙었다. 굳이 긁어내 꺼내려 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딛고 설 단단한 받침으로 두련다.

 

 

 


2022/09/29 12:26

생일 – 20220929 배시시작(作)

나의 생일은 양력 66일이다.

현충일이라 언제나 쉴 수 있는 날이고 누구든 잊기 힘든 날이다.

예전에 어른들은 음력 생일이 진짜라 여기시는 것 같았다.

나의 생일을 양력으로 한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음력 생일이 윤달이라 해마다 나타나는 날이 아니니 '어쩔 수 없이'라는 표현을 하시는 것이 뇌리에 남았다.

생일이 되어도 별스럽거나 특별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쩐지 생일이라고 티 내는 것이 오히려 쑥스러웠다.

생일날은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려야 하는데 엄마가 안 계시니 생일이 서럽더라는 이웃 언니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내 생일에 제일 고생한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리는 것을 나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늦게 깨닫다니... 이후로는 함께 식사하고 꼭 감사 편지를 드린다.

제 작년에 나의 생일은 좀 특별했다.

2020년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윤사월의 나의 음력 생일을 만났다.

장난으로 음력, 양력 다 챙길 거라 말하고 다녔더니

친정아버지께서 한 달 내내 생일로 살라 하셨다.

 

늘 열심히 사는 내 딸아, 너는 일 년 내내 축하받아도 된다.”

 

이야~감동이다.

감동을 간직하고는 작정했다.

생월 내내 축하받겠다고 선언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깜박했다며 미안하다고 늦게라도 축하해주는 친구들에게

괜찮아~ 올해는 생월을 보내기로 했어

그러니 늦지 않았다고... 고맙다고 답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내가 나로 태어난 이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의미,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며 생각을 키우는 한 달을 보낼 수 있었다.

 

.......

나는 2.5kg의 작은 아기로 태어나 엄마의 껌딱지로 컸다.

엄마의 표현은 10달 배속에 담았는데 12달 입덧을 한 것 같다고 하셨다.

돌 지날 때까지 엄마 젖만 먹었으며 이유식도 잘 먹지 않아

젖을 뗄 때도 사흘을 굶고 울었다는 고집쟁이 아기.

잠을 자는 중에도 엄마가 옆에 있어야 자고 아빠가 있어도 오래 잠들지 않았으니

엄마는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어서 힘들었다고...

낯가림도 심해서 그 누구에게도 안겨 있지 않으려 했다는 아이.

그럼에도 엄마는 나의 애착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셨나 보다.

낼모레면 50이 되는 딸의 전화 목소리만 듣고도 컨디션을 알아채신다.

잠을 더 자라느니, 뭘 더 먹으라느니 처방을 내리신다.

내가 엄마가 되었어도 엄마는 언제나 필요하다.

 

남편이 장난처럼 말했다.

 

"좋겠다. 엄마 있어서......"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났다.

 

"당신은 언제 엄마가 젤 보고싶은데?"

"종종......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엄마 생각이 나네....“

 

가슴에 휑하니 바람이 들어와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19년을 모신 시어머님....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먹먹해지는 내 가슴이

남편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살면서 살갑게 못 했던 기억만 남아 가슴 아프다는 남편이다.

을 이야기하다가 를 배운다.

후회로만 남지 않을 을 위하여...

 


2022/09/29 11:52

지금, 여기에서 ‘나’로 살아가는 법 - 9월 29일 날마다 날마다 글쓰는 이들

나만 다른 걸까?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걸까?

버텨야 하나?

도망쳐야 하나?

 

이런 의문이 들 때...

나는 ...

버티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다르지만 닮고 싶어 하는 내가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닮지 못하는 것을 기뻐한다.

달라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므로 똑같아져서 내가 지워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버틸 이유도 도망칠 이유도 없다.

지금,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숨을 쉰다.

 


2022/09/28 11:45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준 사람이 있었나요? - 9월 28일 날마다 날마다 글쓰는 이들

온전히는 아니어도 순간순간은 있었겠지...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것이 욕심이란 것을 일찍 깨달았다.

욕심을 내어도 될 나이에 포기체념을 마음 바닥에 깔아버렸다.

 


2022/09/27 23:25

숨 고르는 하루 - 9월 27일 날마다 날마다 글쓰는 이들

 

숨 고르는 하루...

주중에 하루쯤 텅 비워 놓아도 좋을 텐데...

해야 할 일, 하겠다는 일로 가득 채워 놓은 다이어리에

드문드문 비워 놓은 공백이 참 반갑다.

그러면 적당히 어려운 일을 조금 미룰 수 있는 느긋한 마음이 되어 편안해진다.

다음날, 그다음 날 일정이 빡빡하다 싶으면 조금 미리 시작하는 여유도 생긴다.

그렇게 숨 고르는 여백의 날이 있어야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오늘이 오전이 그랬다.

아이들의 이불도 바꿔주고

더운 계절에 미련을 두었던 물건을 정리해서 넣었다.

집안에도 여백을 만들었다.


2022/09/27 21:44

김장 – 20220927 배시시작(作)


코로나 이전, 김장하는 날은 잔치였다.

 

해마다 잔칫날 같았던 김장 행사가 코로나를 겪는 동안 모이지 못하고 조용히 지났다.

2019년 가을까지만 해도 강화도 양도면 도장리에서는 김장 잔치가 벌어졌다.

...

아침을 먹고 출발해 11시가 다 되어 도착해 보니

내가 할 일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다 해놓으신 터라 가지고 간 빈 김치통에 옮겨 담기만 해서 김장을 했다고 말하기 민망스러웠다.

토요일부터 시작된 김장 놀이는 12일로 끝이 났다.

텃밭에서 걷어 들인 배추와 무, 양파와 마늘, 고춧가루까지 모두 부모님이 수확하신 것들이었다.

80이 넘은 큰고모, 70이 다 되어가는 작은 고모 두 분, 친정집 근처에 집을 지어 귀농 준비를 하시는 큰 아버님 내외분, 30년 전부터 터를 지키고 계신 작은 아버님 내외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김장 놀이를 하신다고 시끌시끌했다.

어찌나 즐거워하시는지 당신들은 김장놀이라 칭하셨다. 해마다 이루어지는 잔치였다.

각 집마다 배추를 할당받아 필요한 만큼씩 나눠 갈 요량으로 절여서 헹군 배추들이 산을 이루었다고 들었다.

자식들 몫까지 따져보니 400포기는 되었다.

무슨 김치 공장도 아니고...입이 떡 벌어진다.

무슨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이느냐고 친정엄마께 말씀드렸더니

손이 많아서 금세 할 수 있다고 걱정이 없으시단다.

그 많은 손이 토요일에는 바다에 나가서 자연산 굴을 땄다고...

따온 굴을 까느라 손 여기저기에 상처가 났으면서도 아버지는 바쁘셨다.

새벽잠도 없는 할마씨들이 4시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셨을 것이다.

 

실컷 놀았는데도 아직 11시 밖에 안 되었네~ 이제 점심 먹읍시다.”

 

막내 고모님 말씀이셨다.

 

오빠, 굴 다 깠어? 밥 비벼 먹으면 딱인데...”

 

둘째 고모님이 굴을 가져다 씻으셨다.

배춧속 남은 것과 굴, 들기름만 넣고 비벼서 한 그릇 뚝딱!

 

", 은희야, 니네 엄마는 너무 힘들텐데... 우리는 너~무 좋다. 앞으로 우리 2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 건강하시기만 하면요. 다들 모이면 소도 잡을 수 있겠어요."

" 그렇지. 깔깔깔"

 

한해를 넘기며 한바탕 실컷 놀았다고 하신다.

즐거우니 행복하고 나이 드는 줄 모르고 좋다고 하셨다.

 

나처럼 지각생이 많았다.

다 해놓은 김치를 가지러 와 인사하고 제 부모님을 모시러 사촌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렇게 만날 기회가 종종 있으니 늘 반갑다.

오랜만에 보는 사촌 조카아이들은 훌쩍 커버려 볼 때마다 놀란다.

녀석들이 생각하기에 어른들이 많이 헷갈릴 것 같은지

'누구 아들, 누구입니다.' 라고 인사했다.

...

코로나 여파로 멀리서 사는 고모님들은 따로 잠깐씩 다녀서 김장재료만 챙겨 가셨다고 들었다.

그래도 퇴직 후 고향 마을로 돌아오셔서 이웃하여 집을 지은 형제가 넷이다.

언젠가 여름엔 할아버지들이 평상에 나란히 앉아 수박을 드시다가 수박씨 멀리 뱉기 내기를 하고 계셨다. 진 사람이 밥 사기...

그 모습이 재미있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행복이 가까이 있었다.

의좋은 형제가 이웃사촌이 되어 살고 계시니 고모님들도 강화에 오시면 오빠들 다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코로나가 사그라들어도 이전 김장잔치는 하지 못할 것 같다.

몇 해 동안 다들 연세가 높아지셨으니 무리하시면 큰일 난다고 자식들이 말린다.

그저 편히 만나서 담소나 나누시라고...

 

자식들 보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을 부모가 되니 조금 더 알겠고,

어른들이 건재하시고 서로들 의지하시니 든든하고 감사하다.

덕분에 자식 된 도리를 다 못해도 마음이 놓이는 속내는 감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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