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1 01:32

괄호 안에 설명을 더한다 - 6월11일 날마다 글쓰기 시즌 1

오랜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구구절절 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 진심을 알 것 같은데 

굳이 괄호를 넣고 채워가며 설명을 더한다.

괄호 속에는 장난이 섞인 말을 적어 넣으며 읽는 친구가 미소 짓는 순간을 만들고 

때로는 인상을 쓰도록 우격다짐도 넣는다. 

친구가 편지를 읽으며 내가 만들어 놓은 괄호를 만날 때마다 얼굴 표정이 바뀌는 상상을 하면서 편지를 쓴다.

쓰면서도 내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나의 본 색이 드러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을 속삭이며

괄호를 만들어 절대 누설 금지의 협약을 만들어 놓는다. 

만약 누설할 시에 야기될 일을 적어 넣으며 협박도 넣는다.  

혹시 나의 협박에 친구가 마음이 상할까 봐  걱정이 되니 괄호를 만들어 또 살짝 애교도 넣는다.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은지 빼곡히 적어 내려간 편지가 제법 길고 두 장 세 장 늘어난다.

때문에 괄호 안의 설명은 긴 편지를 읽느라 힘들지 않게 쉬어 읽도록 하는 쉼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짧은 편지 글일 때, 나를 떠올리는 시간이 적어질까 붙들어 두고 싶은 나의 마음이다. 


2021/06/10 23:42

시카고 CHICAGO 극장가를 서성이다가

딸이 엄마 생일 선물로 준비한 공연티켓.....
오랜만에 딸과 둘이 데이트를 햇다. 
얼마 만에 공연장을 찾은 것인지.......
멋진 공연을 선물 받고 감동에 빠져서 돌아오는 길에 <팬텀>을 예매하고야 말았다.
샤롯데씨어터.....
남편에게 또 보러가려고 예매 했다 말하니 
"볼 수 있을 때 보러다녀~"
사실 남편도 떼어 놓고, 수험 준비하는 아들도 떼어 놓고 딸과 둘만 다니는 것이 좀 미안하다.
딸은 친구가 된다더니
내가 피땀눈물로 소중히 기른 귀한 친구
내 휴대폰에 저장된 그녀의 이름은 '진귀한 보물'이다. 



2021/06/10 23:26

배고픈 애벌레 천만권의 책읽기

에릭 칼 , 이희재 옮김 더큰, 2007년

올해 그림책 작가의 거장 에릭 칼이 별세하셨다. 91세.....
새로 난 길로 도서관을 가다가 길을 잃었다. 
잃은 길 위에서 꽃과 나비를 보았는데 그렇게 찾아간 도서관에서 만난 배고픈 애벌레를 데려왔다. 
얼마 전 토론 모임에서 자신을 인상 깊게 소개하는 이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미션이 있었다.

"나는 꿈틀꿈틀 애벌레 입니다.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계속 기어가고 있어요. 
곧 나비가 되어 훨훨 날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인지 애벌레를 보면 애정이 간다. 

2021/06/10 21:43

길을 잃었다가........ 일상의 낙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기 위해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안양川 너머에 있는 도서관 까지 왕복으로 걸으면 2,000보가 조금 넘는다. 
오늘은 새로 건설된 보도 전용 다리로 건너가 보려고 마음먹었다.
 강 건너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이 힘을 모아 구청에 건설 요청을 했던 사업이다.
사업 승인이 났어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정작 요청한 아이나 학부모는 누리지 못하고 졸업을 했다. 
그래도 걷기 좋은 다리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서 좋다. 
오늘은 일부러 그 다리를 건너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거리를 따져보면 돌아가는 길이라 더 많이 걷게 되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대충 계산해 보아도 넉넉잡아 한시간이면 운동도 될테고 걷기 좋은 시간이라 생각되었다.
 새로 생긴 다리는 깔끔하고 멋스럽게 잘 만들어졌다. 
다리가 너무 튀지않아 하천과 이질적이지도 않았고 잘 어울려 보여 거부감도 없었다. 
다리를 넘어 내려가니 낯선 동네였다. 
내가 가야하는 도서관이 저만치 보이는 데 가는 길이 막혀있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 하천 아래 길로 내려왔다.
원래 건너 다니던 교각까지 하천 길을 따라 걸어가야 했다.  
하천 길은 꽃길이었다. 
자전거 전용도로 옆으로 난 보도를 천천히 걸으며 꽃과, 나비도 보았다.
가끔 낯선 길로 들어서 길을 잃어보는 것도 괜찮은..... 
기분 좋은 경험이다. 
책을 짊어지고 걸으며 자연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21/06/10 00:27

말 줄임표..... - 6월 10일 날마다 글쓰기 시즌 1

저 사람과는 멀어져야겠다.

애정이 넘치고 열정을 쏟아부으며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저 사람에게는 들키지 말아야겠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포기했는지 알게 하지 말아야겠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내디딘 한 걸음인지......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망설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절대로 들키지 말아야겠다.

더 머물지 못하고 급히 돌아가야 한다는 나에게 


"세상을 그렇게 살지 말아라. 이럴 거면 뭐 하러 나왔냐?

열심히 하는 다른 사람들은 다 시간이 남아서 있는 줄 아느냐?

유종의 미가 무엇인지 모르느냐?"


민망하고 무안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녀의 열정이 좌절하지 않도록

나는 말을 줄이고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저 사람과는 가까워지지 말자. 아무것도 들키지 말자.

그녀에게는 '그녀가 생각하는 나' 로 그냥 살아야겠다.


이해 받으려 애쓰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해.......

나를 이해하게 되면 낙심하여 그녀의 열정과 헌신이 퇴색할지도 모르는 그녀를 위해.......


2021/06/09 14:18

오늘의 인생 날씨, 차차 맑음 천만권의 책읽기

<오늘의 인생 날씨, 차차 맑음> 이의진, 행성B 2020년

 집착은 각자에게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좋은 집과 명품 옷과 번들거리는 학벌과 사회적 지위만 집착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자신이 가질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모든 욕심은 집착이다. 
한 달 수입 몇 천 만 원인 사람에게 천만 원 짜리 가방은 너끈한 소비이자 당연한 권리이겠지만 
한 달 수입 몇 백 만 원인 사람에게는 단돈 십만 원 짜리 가방도 사치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유지하겠다고 악착스러움을 보이는 건 집착일 수 밖에 없다. 
.......
끊임 없이 사들였고, 읽을 만큼 읽고 나선 즉시 정리했을 뿐이다. 
요컨대 화분이든 책이든 그러한 것들을 통해 내 삶에서 소유하려는 집착을 끊어 내는 연습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우리 집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다 문득 보게 되었다. 
마치 산사(山寺)의 한 공간처럼 텅 빈 듯한 고즈넉한 고요를, 
하지만 역설적으로 넉넉한 여유로움으로 채워진 빈 공간을 말이다.  

미니멀 라이프......
 내가 머무는 공간이 어디든 내 물건들을 최소한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과 달리 끊임없이 늘어나는 짐에 둘러싸이게 된다.
옷장 속에서 숨도 못 쉬고 끼어있는 옷들을 꺼내어 버렸다. 버렸어도 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주방 싱크대 속에 언제부터인지  모아 놓은 유리병들이 넘쳐 난다. 유난히 유리병에 집착을 하는 것이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담은 음식이 다 들여다 보이고, 남은 음식의 양도 알 수 있는 유리 용기가 이 너무 좋다. 
자칫 깨뜨릴까 조심히 다뤄주어야 하니 그러한 나의 태도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다. 그럼에도 지나쳤다.
그 많은 유리병을 버렸다. 결국 다 버리지는 못했다. 
태풍이 불어 온다면 다 날아갈 것들......
내 인생이 차차 맑아 지기를 바라면서 과한 것들을 조금씩 더 덜어내 본다.



2021/06/09 00:00

몽당 연필을 쥐고 새벽을 여는 사람들.... 6월 9일 날마다 글쓰기 시즌 1

 결혼하기 전까지 검정고시 학원에서 일을 했었는데, 중등과정을 가르치고 있던 중에 원장님께서 새벽반 한글 강의를 부탁하셨다. 학원을 열고 수강생 접수까지 맡아야 하는 일을 아무나 시킬 수 없다며 강한 신뢰를 보여주셨고 감사한 마음으로 새벽 강의를 시작했다. 일찍 출근하는 만큼 오후 4시면 퇴근이라 9시, 10시까지 일하는 것보다 시간을 활용하기 좋았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는 이른 시간이 너무 혹독했다. 새벽 5시 10분이면 버스를 타기 위해 잰걸음으로 집을 나서야 했다. 얼른 가서 교실을 온기로 가득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주말을 비워둔 채 맞는 월요일 아침이면 특히 더했다. 추위로 교실이 얼어 있으면 새벽같이 나와 자리하는 학생들의 손도 얼기 때문이다. 하루의 시작을 나와 함께 하는 교실의 주인은 20~70대 사이의 어른들인데, 대부분이 40~60대 주부들이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동생들 뒷바라지하고, 집안의 생활비를 보태려 일찍부터 일을 하느라 원하던 공부를 하지 못하고 때를 놓쳐버린 분들이었다. 배움에 목말라 여전히 바쁜 시간을 쪼개서 식구들 출근 준비, 식사 준비 등 손이 필요한 일들은 더 일찍 일어나 미리 해두고 공부하러 나오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연령과 교육과정을 연결시켜보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때가 1996년이었다. 가끔 TV 뉴스나 신문에서 떠드는 최고령 합격자 누구누구 하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별로 실감을 하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모르다니.......... ‘그동안 어떻게 사셨을까’ 처음엔 놀랐고 그다음엔 그 답답함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그분들은 나를 ‘우리 애기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분들을 만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한 글자 한 글자 알아가는 기쁨으로 빛나는 웃음을 보게 되면 내 가슴 밑바닥에서는 조금씩 금이 갔다. 글을 몰라 서러웠다던 사연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받아쓰기를 한 후 내가 채점을 하는 동안, 학생들은 글 짓는 시간을 가졌다. 하얀 백지를 나눠드리면 딸 같은 어린 선생님이 어려워 연필 잡은 손을 덜덜 떠는 것도 보았다. 그 손을 꼭 잡고 웃으며 말을 건넸었다.

“ 어머님 틀려도 괜찮아요. 편안하게 하고 싶은 말 들을 써보세요. 생각이 안 나는 글씨가 있으면 다 알려드릴게요.”

“ 선생님 창피하니까 다른 사람 보여주면 안 돼요. 진짜 진짜 안돼요.”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그랬다. 신신당부를 하며 수줍은 모습들을 하고 몇 자씩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서로 얼굴 보고 웃고, 짝꿍이 들여다볼까 봐 잔뜩 웅크리고 가리며 또 썼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모습에 웃음이 났었다. 교무실에서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많았다.

 사연들은 거의 못 배운 설움 이야기였다. 학교 가는 아이들이 부러워 담 밑에서 울었다는 얘기, 마당에 손가락으로 이름자만 썼다가 지우곤 했다던 얘기, 월사금 잃어버려서 엄마에게 매만 실컷 맞고 그 후론 학교에 못가 봤다는 얘기, 남의 집 식모로 다니며 그 집 아이들이 배우는 책을 몰래 만져보다가 도둑년으로 몰려 맞은 얘기, 은행에 가서 돈을 찾을 일이 있었는데 글을 모른다는 것이 창피해 오른팔에 붕대를 친친 감고 가서 팔이 아파 그러니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더라는 얘기, 어디를 혼자 찾아가려면 글을 몰라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고 가봤던 곳이 아니면 헤매기 일쑤였다는 얘기, 그렇게 세상이 두려워 바보처럼 살았다고 한을 쏟아 놓았다. 쓰는 사람도 울고 읽는 사람도 손수건이 필요한 사연들 뿐이었다. 그래도 끝자락쯤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선생님 고맙습니다. 열심히 배워서 선생님께 편지 쓸게요. 우리 애기 선생님, 

          저한테는 첫 선생님입니다. 끝까지 해 볼 테니 도와주세요. ’

 이렇게 맺은 글 아래의 여백에 나도 용기를 줄 수 있는 글 몇 자씩 적어 넣었던 기억이 난다.

두 시간 수업을 마치고 모두 삶터로 돌아간 후 텅 빈 교실을 정리하다 보면 몇 가지 챙겨두어야 할 것들이 눈에 띄었다. 잘 다듬어진 볼펜 깍지와 손으로 깎아야 할 만큼 짧은 몽당연필이 든 필통, 자녀들이 쓰다 버린 공책을 가져다가 여백 하나 남기지 않고 빼곡히 써 내려간 글씨, 자녀의 이름이 쓰여 있긴 했지만 글씨체를 보면 누구의 공책인지 알 수 있었다. 일부러 두고 간 것은 아닐 테고,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혹은 숙제를 하려다가 “ 아이고, 두고 왔네 ” 하셨을 것이었다.

나는 그분들이 소중히 사용했던 몽당연필과 ‘공책’이란 단어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몽당연필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두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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