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5 16:39

천년의 수업 천만권의 책읽기

<천년의 수업> 김헌, 다산초당(다산북스) 2020년



목차




[들어가는 문] 질문하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팩트 체크부터 에포케까지  바르게 질문하고 있습니까?
 질문의 기초: 사실 확인

 | 질문의 기본: 맥락 파악  | 그리스인들이 가치를 판단하는 3가지 방법 | 성급한 판단을 경계하는 에포케의 지혜


 P. 37 

이 일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 

법에 저촉되거나 일반적인 윤리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가? 

멋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추하지는 않은가? 


[첫 번째 문] 나는 누구인가?
: 세상을 향한 질문의 시작

나를 바로 세우는 일 -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 ‘내가 누구인가’를 묻게 되는 순간

‘내가 아는 나’와 ‘남이 보는 나’ 사이에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나의 모습
스스로를 마주하는 일의 무게
인간에 대한 질문의 시작점  | 내가 누구인지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


[두 번째 문]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 세상에 새겨 넣는 나의 무늬

거대한 세계관이 시작된 곳
놀라운 사유와 상상력의 중심 | 진실 같은 거짓말의 세계와 거짓말 같은 현실 세계
인간의 민낯과 본성을 마주할 용기
로고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나는 세상에 무엇을 새겨 넣을 것인가
사람다움을 묻는 인문학의 쓸모


[세 번째 문]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가?
: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

모든 존재와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
영원한 삶에 대한 인간의 갈망 |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발버둥
잊히는 삶이냐, 기억되는 죽음이냐
인간의 삶을 선택한 오뒷세우스 |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는 것 | 죽음이 있어 의미 있는 삶


P. 109

 모든 존재는 왜 죽는 것일까? 

으면 내가 완전히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주위 사람과 사이가 안 좋을 때 인간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연애가 잘 안 풀리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묻게 되듯, 

죽음이란 삶 자체를 회의하게 만듭니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만큼 강력하게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질문은 또 없을 것입니다. 

죽음은 인생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계기이자. 

동시에 모든 질문을 백지화 시키는 막강한 힘이 있는 셈입니다.



[네 번째 문] 어떻게 살아야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 있을까?
: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멋진 주인공이 되기 위해

인생에서 주인공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텅 빈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가?
나의 역사와 세계를 만드는 위대한 사람
당신의 삶은 귀하다 | 황제보다 영예로운 시인의 세계


[다섯 번째 문] 세상의 한 조각으로서 나는 무엇일 수 있을까?:
: 개인은 미약하나 시민은 강하다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힘
‘아무도 안’인 사람의 반격 | 로마 공화정을 수립한 한 사람의 힘
나와 남을 일치시킬 수 있는 능력
공감과 자각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여섯 번째 문] 변화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교육에 대하여

인류 역사를 지속시키는 두 가지 조건
우리의 교육은 사람을 향해 있는가? | 줄 세우기 사회가 만드는 천편일률적 대답
다음 세대에게 사다리를 놓아주는 일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교육도 변하지 않는다 |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기른다는 것


[일곱 번째 문]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될 수 있을까?
: 역사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것

그리스 신화의 시작
새로운 세상의 도래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맞대결
무엇이 세상을 변하게 하는가
틀을 부수어야 역사는 나아간다
안주하는 삶을 경계한 그리스인과 한국의 교육 제도 | 아량과 존경을 품고 맞설 것


P.240

 알베르 카뮈 <반항하는 인간>

 " 반항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NO'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거부는 해도 포기는 하지 않는다.

[여덟 번째 문]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
: 갈등을 넘어 화합으로 가는 길

욕망이 충돌하는 세상에 대처하는 자세
에로스, 결핍과 욕망에서 사랑으로
연민과 공포, 그리스 비극 관람은 나를 죽이는 시간
이아손과 메데이아가 보여주는 것 억압된 욕망을 달래는 슬기로운 완충기
이기적인 욕망에서 화합으로 이르는 길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지혜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

[아홉 번째 문] 잘 적응하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 고전과 인생의 상관관계

인생의 사용 설명서를 펼치며 오래된 것이 아니라 최고인 것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험해야 한다
인간의 기억을 구성하는 것
성장은 지나온 역사이자 계속되는 과정이다

P. 308

 독서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몇 가지 질문을 붙들고 가는 게 중요한 것처럼 

독서 또한 양보다 질이 먼저인 것 같아요. 

많은 책을 읽어도 수박 겉핥기 식이면 남는 게 없거든요. 

평생 가까이 두고 시시때때로 펼쳐볼 수 있는 '내 인생의 책'이 있으면 

마치 든든한 후원자, 믿음직한 동반자를 곁에 둔 것처럼 든든합니다. 

같은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걸 얻을 수 있듯이 

한 가지 질문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던지면 이전과 다른 답이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의 깨달음이나 답변이 꼭 완벽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구하고 얻는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시야는 조금씩 넓어지고 지혜도 조금씩 깊어질 거예요. 

저는 그러한 과정이 바로 성장의 기반이자 성장 그 자체라고 봅니다. 

인간의 삶에서 성장은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무르익어가며 아름답게 저물어가겠지요.  


[나가는 문] 한때 우리 모두 질문이 많던 사람들


P. 314


질문하지 않는 삶이 무조건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질문이 너무 많은 사람은 

그 질문이 주는 고민의 무게에 짓눌려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러나 질문을 적절히, 잘 던지는 사람은 

사는 동안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걷기만 하면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놓칠 거예요.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만이 길가에 핀 꽃을 보고 

그 꽃이 어떻게 피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만이 그 길의 흙과 빛, 바람을 살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묻는 사람의 눈에는 

또 다른 길이 보이며,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에게는 

점점 더 넓은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2021/09/24 02:11

여백 - 9월 23일 날마다 날마다 글쓰기 이들

  아파트 평수를 넓혀 이사 왔을 때 다짐했다. 언제고 다시 절반의 넓이로 이사 가도 괜찮을 만큼 짐을 늘리지 않기로....... 물건에 치이지 않고 여백의 공간을 누리며 살자 생각했다. 짧게 쓸 물건이 있다면 대여해서 쓰고,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면 나누어 덜어내고 집안 구석에 방치하지 않았다. 사은품이든 기념품이든 계획에 없던 물건이 생길 때면 사용할 물건인지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인지 판단해서 필요 없다 생각되면 바로 나눔 했다. 그렇게 해도 짐이 전혀 늘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해 묵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도록 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내가 움직이는 공간에 여백이 있어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내뱉는 말에도 여백이 있으면 좋겠다. 말에 여백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못다 전한 말을 가슴에 남겨두면 먼지 쓰고 앉아있는 묵은 짐 같아지는 걸까? 이리저리 밀리다 버리게 되는 걸까? 말에 여백을 만들려다 가슴에 두어야 할 여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말과 가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가슴에 여백을 더 두고 싶다.

  그렇다고 말에 여백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굳이 내뱉지 않아도 되는 말을 삼키고 삼키며 살려한다. 삼킨 말이 삭아서 사라지도록 묵혀두려면 더 너른 가슴이 필요하다. 너른 가슴...... 또 어렵다.

 


2021/09/22 17:27

떡 - 9월 22일 날마다 날마다 글쓰기 이들

긴 추석 연휴...... 조용하고 평안하다. 집안에 어른이 계실 때와는 너무나 확연하게 달라진 명절 분위기다.
어른을 모시고 살 때는 연휴 전 주말부터 명절이 지난 후의 주말까지도 손님치레를 해야 하는 때가 많았다.
연휴가 길면 길수록 쉴틈이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와 겹치기도 했지만 2019년 여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명절이 고요하고 조용해졌다. 심심하기까지 할 만큼......

형제들의 협의에 의해 복잡한 명절은 각자 보내고 아버님 어머님 기일이나 기념할만한 날에 만나자는 것이다. 남편보다 위인 시누님들은 이제 사위며, 손주를 볼 나이들이 되었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한결 편해진 명절이 낯설다. 이 이상하고 묘한 느낌을 딱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명절에 홀로 외롭다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무슨 뜻이었는지 알게 된 것은 맞다.  

옆집 할머니 댁에서 시끌시끌 사람들이 드나들며 북적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한 접시만큼이라도 추석에는 송편을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심심한데 만들어 볼까? '생각하고 쌀가루를 사러 나갔더니 파는 곳을 찾을 수가 없다. 예전에 다니던 방앗간은 폐업을 해서 다른 상점이 들어섰고, 떡집을 가도 쌀가루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못 산다고 하니 괜히 더 서운했다. 그렇다고 파는 송편을 사기는 싫었다. 

떡에 대한 기억이 참 많은데 그중에 '직접 만들었던 떡', '나누는 떡'이 제일이다. 어릴 때 할머니와 송편을 만들던 기억, 이사하면서 이웃에게 인사로 나누던 떡 말이다. 요즘엔 이사떡 돌리는 것을 볼 수가 없다. 도시가 점점 삭막해지는 것일까? 6년 전 내가 이사할 때는 떡을 준비해 돌리며 인사를 했다. 그렇게 얼굴도장을 찍었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인근에서 이웃을 만날 때 눈인사라도 하게 되고 어색함이 줄어들어 좋았다.  또 한 번의 이사를 고민하면서 계획을 얹어 본다. 이사하면 꼭 맛있는 떡을 해서 이웃에 인사하는 풍습을 이어보자고...... 그렇게 소통의 문을 여는 시도를 멈추지 않겠다고......

 

2021/09/22 12:01

이사 – 9월 21일 날마다 날마다 글쓰기 이들

삶의 터전을 옮겨 앉는다는 것......

어릴 때는 부모님 따라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 마냥 설레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살던 곳을 떠난다는 아쉬움 같은 것은 없었다. 정든 곳을 떠난 다는 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을 붙이지 않았던 것 일지도 모른다. 사는 곳이 어디든 그 장소를 내가 찾고 정하지 않아서였을까?

 

내가 살 곳을 내 의지로 찾기 시작한 것은 결혼 준비를 하며 살림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였다. 집을 알아보면서 준비된 돈에 맞는 적당한 집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 진이 다 빠졌다. 너무 허름한 집은 싫었고, 좀 깔끔하다 싶으면 돈이 부족했다. 결국 찾은 곳은 서울의 서남쪽 끝이었다. 행정구역은 서울이었지만 아파트 도로 하나를 건너면 광명시였다. 안양천 직강공사로 인해 안양천 너머로 분리된 독산동이었다. 생활권이 광명시였고, 쓰레기봉투를 사려해도 가까운 마트는 광명시 봉투만 팔아서 살 수 있는 마트를 찾아 더 이동해야 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고 너무 주변 조사도 없이 덜컥 집을 계약한 것이 아닌가 후회가 되는 순간도 있었다. 남편의 직장과도 가깝지 않았다. 밤에 택시라고 타고 오려면 기사님들이 '거기가 서울이냐? 광명 시니까 요금을 더 받아야 한다.'하고 해서 남편과 실랑이를 벌인적도 적지 않았다.

 

살면서 정이 들었다. 주변에 유해시설이 하나 없어 아이들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 생각했다. 가까운 안양천의 생태환경도 도심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자연의 혜택이었다. 23년을 한 동네에서 살았다. 그동안 아파트 평수를 넓혀가며 두 번 이사를 했다. 이사를 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아서였다. 전세 계약을 하기로 한 날 친정엄마를 모시고 갔다. 태어나 처음 하는 '계약'이라는 것에 겁이 나기도 했고 경제에 밝으신 엄마가 계시면 든든할 것 같다는 예비신랑의 요구에 흔쾌히 응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역시 친정엄마께서 부동산 중개업자와 나누는 말씀은 차원이 달랐다. 주변 상권, 시세, 도시계획.... 등등 다 살피시더니 전세가 아니라 매매를 할 경우 집값이 얼마인지 물으셨다. 17평 아파트의 전세가 3,200만 원 매매가는 5,000만 원이라는 설명을 들으시더니 우리가 본 집을 혹시 매매할 생각은 있는지 바로 흥정에 들어가셨다. 어리둥절해서 우리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의 말씀은 이랬다.

 

" 집은 이럴 때 사야 하는 거야. 모자란 비용은 엄마가 보태줄 테니 천천히 살면서 갚아라. 살아봐라. 전세 살면서 이사 자주 다니면 살림 다 망가지고 고생한다. 그러니 지금 이 집을 사서 아이들 낳고 좀 클 때까지 살아라 그래도 좋을 집이다. 살면서 언제고 엄마가 한 번 도울 일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지금이 좋겠다. "

 

엄마의 판단은 현명했다. 그때가 1998, 국가 부도위기를 겪었던 시기로 아파트 값이 바닥을 찍을 때였다는 것을 10여 년이 지난 후 [서울시 집값 상승 추이 그래프]를 보고서 알았다. 부모님 덕분에 여태 전세살이 한번 않고 살았다. 분명히 자랑할 일이 아니라 그저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같은 시기에 결혼한 친구는 2년 뒤 전셋값이 두배로 폭등해서 반지하로 옮겨가야 했지만 나는 전셋값 걱정은커녕 집값이 오르기 시작해서 깔고 앉은 자산이라해도 금세 늘어났으니 말이다.

 

다시 이사를 생각하고 있다. 이번엔 낯선 곳으로 도심을 벗어나 보려 한다. 마당 있는 집을 꿈꾸지만 사실 자신이 없다. 아파트 생활만 한지 오래라 주택을 관리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릴 때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던 좋은 추억은 부모님의 부지런함 덕분이었다. 우리 부부가 감당하고 살 수 있을지 몰라 먼저 전원주택 전세살이를 해볼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2021/09/18 11:47

공정하다는 착각 천만권의 책읽기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2020년

서론: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입시의 윤리 | 능력 지표 따내기

CHAPTER 1. 승자와 패자

포퓰리즘적 불만에 대한 진단 | ‘테크노크라시’와 시장 친화적 세계화 | 빈부격차를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법 | 능력주의 윤리 | 굴욕의 정치 | 기술관료적 능력과 조직적 판단 | 포퓰리즘의 준동


CHAPTER 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왜 능력이 중요한가 | 우주적 능력주의 | 구원과 자기 구제 | 과거와 지금의 섭리론 | 부와 건강 | 자유주의적 섭리론 | 역사의 옳은 편 | 도덕 세계의 궤적

CHAPTER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고된 노력과 정당한 자격 | 시장과 능력 | 자기 책임의 담론 | 재능과 노력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 | 포퓰리즘의 반격 | 과연 “하면 된다”가 맞나? | 보는 것과 믿는 것

CHAPTER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무기가 된 대학 간판 | 불평등의 해답은 교육? | 최고의 인재들 | 스마트해지기 위한 일 | 대중을 내려다보는 엘리트 | 학위가 있어야 통치도 한다 | 학력 간 균열 | 기술관료적 담론 | 테크노크라시냐 데모크라시냐 | 기후변화 논란
CHAPTER 5. 성공의 윤리
기술관료의 지배나 귀족의 지배냐 |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 | 능력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 완벽한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 재능은 자신만의 것인가? | 노력이 가치를 창출하는가? | 능력주의의 두 가지 대안 | 능력주의에 대한 거부 | 시장과 능력 | 시장 가치냐 도덕적 가치냐 | 쟁취한 자격인가, 권리가 인정된 자격인가? | 성공에 대한 태도 | 운수와 선택 | 재능 계산하기 | 능력주의의 등장

CHAPTER 6.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능력주의 쿠데타 | 능력주의의 폭정,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다 | 코넌트의 능력주의 유산 | 돈 따라 가는 SAT 점수 | 불평등의 토대를 더욱 다지는 능력주의 | 명문대가 사회적 이동성의 엔진이 되지 못하는 이유 | 능력주의를 더 공평하게 만들기 | 인재 선별 작업과 사회적 명망 배분 | 상처 입은 승리자들 | 또 하나의 불타는 고리를 넘어라 | 오만과 굴욕 | 유능력자 제비뽑기 | 인재 선별기 부숴버리기 | 명망의 위계질서 | 능력에 따른 오만 혼내주기

CHAPTER 7. 일의 존엄성

일의 존엄성 하락 | 절망 끝의 죽음 | 분노의 원인 | 일의 존엄성 되살리기 | 사회적 인정으로서의 일 | 기여적 정의 | 일의 존엄에 대해 논쟁하자 | ‘열린 어젠다’의 오만 | 금융, 투기 그리고 공동선 | 만드는 자와 가져가는 자

결론: 능력, 그리고 공동선


P. 49 
 미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참아 왔다. 
어디서 출발하든 부자는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상승 가능성에 대한 이런 믿음은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다.

P. 53
아래쪽에서 올려다볼 때, 엘리트의 오만은 짜증 나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구도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서고 싶지 않다. 그
러나 능력주의 신앙은 그들이 입은 상처에 굴욕까지 보탠다. 
자신의 곤경은 자신 탓이라는 말, "하면 된다" 라는 말은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는 자신감을 불러 넣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욕감을 준다. 
승자에게 갈채하며 동시에 패자에게 조롱한다.  패자 스스로 마저도 말이다. 
일자리가 없거나 적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나의 실패는 자업자득이다. 
재능이 없고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헤어나기 힘든 좌절감을 준다.

P. 96
 킹과 파거의 입을 통해 도덕 세계의 궤적이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는 
믿음은 부정의에 맞선 싸움을 위한 크고 예언자적인 외침이 되었다. 
그러나 똑같은 섭리론 믿음이 약자들에게는 희망을, 강자들에게는 오만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자유주의의 감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민권의 도덕적 긴급성에 대한 감각이 냉전 이후 자족적인 승리주의 감각으로 바뀌어 버렸다.

P. 263
 성별, 인종, 민족적 차이에 대해 훨씬 관용적인 태도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능력주의 엘리트는 유동적인며 계층 이동이 활발한 사회를 못 만들어 냈다. 
대신 오늘날의 학력주의적, 전문직업인 위주 계층은 그들의 특권을 어떻게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 감을 잡고 있다. 
그것은 자녀들에게 막대한 재산을 상속해 주는 방법이 아닌, 
능력주의적 사회에서 성공을 결정하는 입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기회의 조정자'와 사회적 상승 엔진' 이라는 새로 얻은 역할에 아랑곳없이, 
고등교육은 최근 확대된 불평등에 대해 어떠한 제동 기능도 하지 못했다. 
오늘날 고등교육 구성원들이 어떤 계층 분포를 보이고 있는지 보자. 
특히 가장 경쟁이 심한 영역을 살펴보도록 하자.

P.297
 인재 선별기가 끼친 폐해를 바로잡으려면 직업 훈련에 예산을 더 많이 투입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여러 다른 일들 사이에서 무엇을 더 높이 평하는지에 대한 재고가 있어야 한다.
 이를 시작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명품 브랜드 대학에 등록한 학생들의 명예를 드높이고 
지역사회 대학이나 기술 및 직업 훈련학교 등록자들의 명예는 별로 쳐주지 않는 명망의 위계질서를 뒤엎어 버리는 것이다. 
배관공이나 전기 기술자, 치과 위생사 등이 되는 법을 배우는 일은 
공동선에 기여하는 훌륭한 과정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SAT 점수가 낮은 사람이나 아이비리그 대학에 갈 만한 재력이 없는 사람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과정으로 여길 게 아니라 말이다.

P. 308
 능력주의 시대는 노동자들에게 더 악랄한 상처를 입히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의 존엄성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시험 점수를 잘 따고 대입 시험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브레인'을 칭송하면서, 
인재 선별기는 능력주의적 학력이 없는 사람들은 시궁창에 빠트렸다. 
그것은 학력이 낮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하는 일은 돈 잘 버는 전문 직업인들의 일에 비해 시장에서 별 가치가 없어요. 
공동선에도 별 기여를 하지 않죠. 당연히 사회적 인정이나 명망도 별로 따라붙지 않아요." 
그것은 시장이 승자에게 퍼붓는 과도한 보상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비대졸자 노동자에게 던져 주는 쥐꼬리 만한 보상도 당연시했다. 
  누가 뭘 가지는 게 정당한가에 대한 이런 식의 사고는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이런 저런 직업의 시장 가치가 그것이 공동선에 기여하는 정도와 비례한다고 보면 오류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에는 
'우리가 버는 돈이 우리의 사회적 기여도를 반영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내려버렸다. 
그런 주장은 공적 문화 곳곳에서 메아리친다.

P. 331
 시장 주도적 사회에서 물질적 성공을 도덕적 자격의 증표로 해석하는 일은 지속성 있는 유혹이다. 
그 유혹은 계속해서 우리의 저항을 깨뜨리려 한다.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논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법을 세우는 것이다.
 공동선에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있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시장의 낙인이 잘못되었는지를 반성하고, 숙고하고, 민주적으로 공동의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런 논쟁이 어떤 합의를 반드시 낳으리라 본다면 비현실적이리라. 
공동선을 불가피하게 논란의 여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일의 존엄에 대한 새로운 논쟁은 우리의 당파적 경향을 무너뜨릴 것이고, 
우리의 정치 담론을 도덕적으로 활성화할 것이며, 
우리가 40년 동안 시장의 신앙과 능력주의적 오만에 빠져든 탓에 양극화된 정치 현실을 넘어 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P. 342
 오늘날 경제에서 누가 만드는 자이고 누가 가져가는 자인지에 대한 논쟁은 결국 기여적 정의론으로 귀착된다. 
어떤 경제 역할이 명예와 인정을 받을 가치가 있느냐에 대한 생각이다. 
이런 사고 과정은 무엇이 공동선에 대한 가치 있는 기여인가를 따지는 공적토론을 필요로 한다. 
나는 제안한다. 
급여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없애는 대신 금융 거래세를 일종의 '죄악세'로 신설하여 
카지노나 다름없고 실물경제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투기 행위를 
억제하는 방안을 토론의 주제로 삼을 것을. 
연히 다른 입장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넓게 보아 일의 존엄을 회복하려는 것이고, 
그러려면 우리 경제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덕적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최근 수십년 동안 기술관료적 정치가 숨겨 왔던 질문들 말이다. 
그런 질문 중 하나는 어떤 종류의 일이 인정과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느냐다.

P. 343
 지난 40년 동안, 시장주도적 세계화와 능력주의적 성공관은 힘을 합쳐서 이런 도덕적 유대 관계를 뜯어내 버렸다. 
그들이 뿌려 놓은 글로벌 보급 체인, 자본의 흐름, 코스모폴리탄적인 정체성은 
우리가 동료 시민들에게 덜 의존적이 되고, 서로의 일에 덜 감사하게 되고, 
연대하자는 주장에 덜 호응하게 되도록 했다. 
능력주의적 인재 선별은 우리 성공은 오로지 우리가 이룬 것이라고 가르쳤고,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잃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유대 관계의 상실로 빚어진 분노의 회오리 속에 있다.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 


P. 351
 우리는 오늘날 조건의 평등을 별로 많이 갖고 있지 않다. 
계층, 인종, 민족, 신앙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은 얼마 없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40년 동안 시장 주도적 세계화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가져오면서 우리는 제각각의 생활방식을 갖게 되었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하루 종일 서로 마주칠 일이 없다. 
우리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살고 일하며 쇼핑하고 논다. 
우리 아이들은 각기 다른 학교에 다닌다. 
그리고 능력주의적 인재 선별기가 일을 마치면, 
꼭대기에 오른 사람은 자신이 그 성공의 대가를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기고 
밑바닥에 떨어진 사람도 다 자업자득이라고 여긴다. 

P. 352
 공동선이 오직 우리 동료 시민들이 우리 정치 공동체에는 어떤 목적과 수단이 필요한지 숙려하는 데서 비롯된다면, 
민주주의는 공동의 삶의 성격에 무관심해질 수 없다. 
것은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삶의 영역에서 온 시민들이 서로 공동의 공간과 공공장소에서 만날 것을 요구한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다른 의견에 관해 타협하며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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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샌델 교수는 
"엘리트들에게 너희들이 이룬 부와 성공은 온전한 너희 노력이 아니니 오만에 빠지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사회의 낮은 계층을 위해 배려하라." 라는 말을 한권에 담은 것이라 이해했다.
능력, 사회가 요구하는 수요에 따라 만들어 내야 하는 재능으로 한정되고 변질되었다.
더구나 그 능력을 실현할 길은 우수한 대학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루트 만을 최선으로 여기도록 굳어졌다.
때문에 노동에 대한 존엄이 사라지고 폄하되어 대가 또한 초라하게 책정된다.
이 모든 문제를 겸손하라는 태도와 양심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고 그 가치를 존중받는 사회 시스템 개선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다만 공동선을 위해 공공의 장소에서의 문제들을 다루고 담론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져야 한다는 결론은 공감한다.
공공도서관이 가까이 많이 생겨야하는 이유다.    


2021/09/17 22:11

집밥 4 - 9월 17일 날마다 날마다 글쓰기 이들



민간 우주 비행이 시작되었다는 기사는 나에게 와 닿지 않는다.
지구를 넘어 우주로 나가는 일이 나의 위시리스트에 없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를 생각하면 이제 우주까지 오염 시키는 것이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도 된다.
지구인 우주인을 구분 지을 때부터 지구인이 우주인이야! 나도 지구에 사는 우주인이라고..... 외쳤다.
우주로 나간 이들이 식사를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연명을 위한 식사이지 싶다.

밀 키트로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제품을 파는 상점이 집 근처에 생겼다.
요즘 같은 시국에 절실히 요구되는 아이템이고, 또 점점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이니 더 늘어날 것이라 생각된다. 

얼마 전 마트에서 카트에 가득 즉석 밥을 담고 계시는 노 부부를 보았다. 
오징어덮밥, 미역국밥, 제육볶음 덮밥..... 등 다양하게 담고 계셨다. 
음식을 하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힘에 부치니 차선책을 찾으신 것 같았다. 
연로하신 분들에게 음식을 하고 치우고 하는,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피로감을 만드는지 생각해 볼 문제였다.

추석을 앞두고 북적이던 예전 분위기가 사라지니 추석이라도 다를 게 없다. 
작년만 해도 일부러 손이 많이 가는 잔치 음식을 준비해서 4 식구뿐이어도 추석 분위기를 내며 잘 먹었다.
그러나 올해는 작정을 했다. 오늘 백신 1차를 맞았으니 '이번엔 그냥 쭈욱 쉴 거야~' 선포했다.

내년에는 좀 달라질까? 왕래를 참고 있는 친지들과 함께 집밥을 나눌 수 있을까? 
점차 맛집을 예약해서 외식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하게 생각될 것이다.
그래서 단출한 집밥이 더 그립고 편하고 맛있다.
집밥의 날을 만들어 식구들을 모아야 할 것 같다. 
굳이 안 그래도 될텐데 또 이런 생각을 한다.  

  

2021/09/16 23:32

집밥 3 - 9월 16일 날마다 날마다 글쓰기 이들


어쩌다 보니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점심과 저녁을 나 홀로 먹었다.
대학생 딸애는 학교 신문사 조판 마감이 이번 주라 매일 7시에 등교했고, 
고3 아들은 막바지 공부에 전념하느라 밤 10시가 넘어야 들어오는 일정이 계속되었다. 
그나마 남편은 그동안 코로나 4단계로 반강제로 칼퇴를 해서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추석 앞두고 일이 많은지 계속 늦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인가?'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 

오로지 나를 위한 밥을 차려서 홀로 먹는 집밥....... 괜찮았다.
설거지도 줄이려 대 접시 하나에 밥과 반찬을 먹을 만큼 덜어 담았다.
물론 예쁘게...... 
고급 뷔페에 가서 먹는 것처럼 적당히 예쁘게.....

월요일, 화요일은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냉장고 비우는 차원에서 남은 음식들을 정리해 가며 
먹어치웠고, 이틀 정도 하고 나니 정리가 되었다. 
나를 위해, 내가 먹고 싶은 메뉴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잔반 처리가 아니라 요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생 치즈를 사다가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김장김치에 다진 고기를 넣고 묵가루를 섞어 김치 묵전을 만들어 먹었다.
매콤 달콤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소면을 삶아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오늘은 병원 진료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오니 피곤해서 김밥을 사들고 들어와 먹었다.

혼자 먹는 집밥..... 외롭기는커녕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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